- 1885년 6월 26일 헤론의 선교편지 중에서 -
헤론이 한국에 입국하여 알렌 선교사를 통해 이루신 하나님의 은혜를 보았을 때 “
이 나라에 견고한 선교의 기초를 설립하고 선교의 문을 열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라고 고백하였다. 제중원이 단순히 병원이 아니고 복음 전파를 위한
선교기지 - 병원, 교육. 교회의 삼중적인 정체성은 더욱 강화되었다.
헤론의 일기에 기록된 헤론 부부가 행한 선교마인드와 사역을 보면 의료선교사이면서 평신도 목회자임일 알 수 있다.
“아직은 공공연하게 우리의 모습을 드러낼 수는 없지만 복음이 서서히 퍼져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현지어로 말할 준비가 될 때 그들은 우리가 전하는 것을 들을 준비가 될 것입니다.”
- 1885년 6월 26일 헤론의 선교편지 중에서 -
알렌을 이어 제2대 제중원장이 된 그는 5년 동안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의료선교사역에 헌신하는 동시에, 1885년 10월 26일에 보낸 그의 편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공식적으로 북장로교 선교회 한국지부를 조직하여 협력선교에도 헌신하였다.
“우리 사역은 아주 빠르게 진척되고 있습니다. 제 아내는 매주일 성경공부반을 시작했습니다. 8~20명의 여성들이 모입니다... 우리 교회가 조선의 요구에 부응하기를 바랍니다. 다른 교회들도 와서 사역을 했으면 합니다. 영적인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있고 그들 모두를 위한 처소가 있습니다.”
- 1888년 3월 19일 헤론의 선교편지 중에서 -
구리개 제중원
1887년 헤론선교사 부부
1890년 7월, 무더운 여름, 선교사 가족들이 무더위를 피해 휴가차 남한산성으로 떠났지만, 사랑하는 조선의 가난한 백성들을 버려둘 수 없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남아서 전염병 환자를 치료하다가 이질에 감염되었고, 7월 26일 34세의 나이로 아내와 두 딸을 남겨 놓은 채 순교하였다. 그의 무덤이 양화진에 있다.
남문밖시대 전에 남문밖정신을 온 삶으로 구현한 헤론의 순교정신이 바로 남대문교회 두번째 정신이다. 헤론의 순교는 제중원이 단순히 병원이 아니라 제중원신앙공동체임을, 다시 말해 제중원교회 헤론 담임목사가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을 삶으로 조선땅에 조선백성에게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헤론의 갑작스런 순교로 제중원은 어려움에 빠졌다. 병원과 부속의학교 그리고 교회 역시 부분적으로 운영되었다(1893년 에비슨 선교사가 올 때까지).